[김재근 기자]
겨울은 돌의 계절이다. 잎을 떨군 나무들이 차갑게 서고, 대지를 덮었던 초록의 생명이 물러간 자리에 돌의 명함인 침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동지를 이틀 앞둔 토요일(20일), 전남 화순에 있었다. 어둠은 제일 긴 시간을 예비하고, 세상 만물이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에 돌의 깊은 침묵과 마주했다.
명산이라 하면 한라산의 이국적인 풍광이나 설악산의 우아함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2025년 국립공원 탐방객 만족도 조사에서 뜻밖에도 무등산(無等山)이 1위를 차지했다. 무등,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니 등급을 매길
릴게임손오공 수 없을 만큼 고귀다는 의미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산의 매력은 '반전'에 있다. 멀리서 보면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러운 능선의 흙산이지만, 산에 들어서면 신의 기둥 같은 억센 돌이 숲을 이룬다.
해발 1,187미터,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중심이자, 호남의 진산(鎭山)으로 광주광역시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와 전라남도 담양군과 화순군에 걸쳐 웅장한 산세를 드리운다. 8,700만 전 중생대 백악기 화산 활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오각형 육각형 등의 거대한 바윗돌들이 성채처럼 치솟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주상절리다.
이 산의 깊이를 아는 이들이 으뜸으로 꼽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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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상절리?바위기둥들이 안개에 감싸여 있다. 오랜 기다림이 안 되어 보였던지 스치듯 안개 사이로 모습을
야마토게임하기 보여주었다.
ⓒ 김재근
대개 명소로 입석대와 서석대를 말하지만, 이 산의 깊이를 아는 이들은 화순 쪽 기슭의 규봉이라고도 하는, 광석대(廣石臺)를 으뜸으로 꼽는다. 바로 옆 너덜과 함께
야마토릴게임 거대한 돌의 신전을 이루어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이라는 이름으로 명승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그 신전을 알현하기로 했다.
수만리 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했다. 무등산의 남쪽 허리춤을 파고드는 이 길은 화순의 산세를 온몸으로 느끼며 정상에 가장 빨리 닿을 수 있는 지름길이자, 남쪽 능선이 그리는 유려한 곡선을 조망할 수 있는 경관을 즐길 수 있어서다.
한 발 한 발 밀어 올리며 장불재에 올라서자, 세상이 돌연 모습을 바꾼다. 구름이라고 해야 할지, 안개라고 해야 할지, 해발 900미터, 무등산의 심장이라 불리는 장불재는 백색의 장막에 싸여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 장막 속에 거친 숨소리 자욱했다. 하얗게 감싸인 세상에서 바위는 기괴하고 신비로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올라 산상 연설을 했다는 바위는 젖어 검게 빛났고, 그 위로 안개가 바람을 따라 유령처럼 흘렀다.
바로 앞만 허락된 길을 걸었다. 안개는 줄지 않고 바람은 바닥나지 않았다.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는 하얀 공허뿐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몰입하게 했다. 렌즈에 담기지 않는 풍경은 망막에 더 깊숙이 새겨졌다, 기록되지 않기에 오히려 가슴으로 깊이 각인되는. 그것은 구름 속 산책이 내게 건넨 뜻밖의 선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세상에 들어선 듯 바람이 멈추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지공너덜. 수직의 주상절리가 억겁의 세월 속에 깨지고 풍화되어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리다 멈춰 선, 폭 150미터의 거대한 돌의 강이다.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가 석실을 만들어 수도하면서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전설이 흐른다. 그에게서 설법을 듣던 라옹선사가 지공너덜이라 불렀고.
희미하게 보이는 겹겹이 쌓인 돌덩이들은 산의 속살이 터져 나온 상처 같기도, 혹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침묵의 퇴적층 같기도 했다. 시간도 멈춘 듯한 고요한 돌무더기 속에서, 젖어 미끄러운 바위들을 밟으며 나아가는 걸음마다 등산 스틱이 부딪치며 내는 둔탁한 소리만이 정적을 깨운다.
이윽고 도착한 광석대(廣石臺). 폭 7미터의 거대한 바위 기둥들이 안개에 감싸여 있다. 바람결에 따라 언뜻언뜻 모습을 감질나게 보여준다. 희끄무레한 웅장함이 신선의 정원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래된 수묵화 병풍 같은 바위 아래서 규봉암이 제비집처럼 몸을 낮게 엎드리고 있다. 돌기둥의 오만한 수직과 암자의 겸손한 수평이 조화롭다. 암자 마당에 서니 돌기둥 사이로 겨울바람이 파이프 오르간처럼 웅웅거린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이다. 수 천만년 후에 내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지공너덜의 파편들이 말해주듯, 이 견고한 기둥들도 부서져 너덜이 되고 흙이 돼 있을 터. 저 장엄한 침묵과 마주할 수 있는 것도 이 순간의 축복이라 할 수 있으리라. 먼 훗날에서 바라보는 오늘, 지금의 삶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이 이런 뜻은 아닐는지. 구름 같은 안개에 내 몸도 축축하게 젖는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꼭 안아주는 듯했다. 가는 길도 안녕하라는 위안까지 담아서.
광석대의 위로를 안고 내려와, 남쪽 춘양면으로 향했다. 거친 돌의 침묵에 새겨진 염원(念願)을 만나러 가는 길, 출출했다. 콩이 좋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검은콩으로 만든 흑두부는 이 지역의 별미다. 도곡면 음식의 거리에 있는 두부 전문점에 들어서니 구수한 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가 상에 오른다. 광석대에서 보았던 바위가 차갑고 단단한 하늘의 돌이었다면, 눈앞의 두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땅의 돌이다. 한 숟갈, 부드럽게 으깨지며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뱃속이 뜨끈해지니 다시 돌을 찾아 나설 힘이 생긴다. 밥심으로 산다는 옛말은 단순한 생존의 언어뿐 아니라, 길을 나설 자를 위한 격려의 언어인 듯도 했다.
선사시대의 기술 생생하게 목격
▲ 핑매바위?뒤쪽으로 채석장이 보인다. 고인돌 전면에 아무개 문중 세장지 임을 알리는 비가 새겨져 있다.
ⓒ 김재근
구름이 많은 하늘이다. 오후의 햇살이 늘어질 무렵,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고개를 넘었다. 좁은 지역에 596기의 고인돌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무등산권 지질공원 권역으로 2000년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조밀하게 밀집된 야외 박물관에 들어섰다.
이곳의 백미는 채석장이다. 완성된 무덤만 덩그러니 있는 다른 지역과 달리, 산기슭 암반에서 돌을 떼어내고 다듬어 옮기던 제작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무덤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낸 치열한 과정까지 보여주는 세계 유일의 유적지다.
화강암인 광석대와 달리 화산재 등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용결응회암 지역이다. 판상으로 쪼개지는 풍화 특성을 활용하여 고인돌 덮개돌을 만들었다. 바위틈에 마른 나무쐐기를 박고 물을 부어, 나무가 불어나는 힘으로 바위를 쪼갰던 선사시대의 기술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요즘으로 치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첨단과학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크다는 핑매바위 앞에 섰다. 무게 200톤. 규모가 거대하고 높은 장소에 자리하여 무덤보다는 상징적인 기념물로 추정한다. 전설 한 토막 없다면 서운할 터. 거인 여신 마고할미가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쌓는다는 소식을 듣고 치마폭에 돌을 담아 바쁘게 가다가, 치마가 찢어져 툭 떨어진 돌이 바로 이 바위란다. 얼마나 분했으면 발로 뻥 찼을까. 바위 윗면에는 그때 뚫린 구멍이 있는데, 왼손으로 돌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슬며시 돌을 하나 주워들었다.
손을 뻗어 바위의 표면을 만져본다. 거칠고 차갑다. 기계도 없던 시절, 오직 사람의 힘으로 이 거대한 돌을 떼어내고 굴려 세웠을 의지는 무엇이었을까. 참으로 미련하다 싶다가도 이게 인간의 본성은 아닐지. 생존의 본능은 권력의 욕구일 것이고 그것을 눈에 보이는 크기로 나타내려는. 피라미드도 진시황릉도 그러할 것이고.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경주나 서울에서 보았던 왕릉도 비슷하고, 현대의 마천루도 재료만 다를 뿐 저 고인돌과 뭐가 다를까 싶다.
겨울 고인돌 유적지는 적막했다. 한동안 돌과 돌 사이, 침묵의 공간을 서성였다. 돌에 새긴 문명으로 여기고 그들의 삶을 엿본다. 사람의 발소리보다 자연의 숨결이 먼저 들렸을 시절, 일정한 리듬으로 계절을 바꾸어가는 하늘 아래서 그들은 물길을 따라 이동하며 내일의 생존을 이어갔을 터. 거친 자연에 남긴 흔적은 안정된 삶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아니었을까. 3천년 전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뜨거웠을 땀방울도 이젠 식었다. 그들의 염원을 가늠해 볼 뿐이다.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내 삶의 크기와 속도에 맞추어.
석탑과 불상이 널려 있는 파격과 신비의 공간
▲ 운주사 와불?길이 12미터의 거대한 두 불상이다. 머리가 낮고 발이 높다. 북쪽 하늘을 보고 누워 있다. 부부일까. 부처보다는 어린 날 보았던 마을 앞 장승을 닮았다.
ⓒ 김재근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 마고할미가 그토록 급하게 향했던 운주사(雲住寺)에 닿았다. 여느 사찰과 다르다. 화려한 단청이나 웅장한 대웅전이 주인이 아니다. 입구부터 발길 닿는 곳마다 평지 비탈 가리지 않고 석탑과 불상이 널려 있는 파격과 신비의 공간이다.
석불과 석탑은 대체로 납작하고 형태가 뚜렷지 않다. 화강암 대신 주변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화산재와 돌덩이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떡으로 치자면 팥시루떡 같은, 층상응회암을 그대로 떼어내 만들었기 때문이다. 층의 형태로 잘 깨지고 부스러지기 쉬운 암석학적 특징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여 석불과 석탑을 제작했던 것이다.
이곳 역시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일원이다. 학계에서는 고려 시대 민중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하지만, 정확히 누가, 왜 세웠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당시에는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이 있었다고 하여 천불천탑이라 불렸다. 기존 불교 미술의 격식을 완전히 파괴한 원형 탑, 호떡 같은 납작한 불상은 귀족이 아닌 고단했을 민초들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와불(臥佛)을 만나러 서쪽 산등성이에 올랐다. 정식 명칭은 와형석조여래불이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국운이 기운 나라의 균형을 잡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우려 했으나, 일을 하기 싫었던 동자승이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바람에 석공들이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바람에 마지막 불상을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채 공사가 멈췄고, 그 미완의 주인공이 바로 이 와불이다.
길이 12미터의 거대한 두 불상이 북쪽 하늘을 보고 누워 있다. 부부일까. 부처보다는 어린 날 보았던 마을 앞 장승을 닮았다. 차가운 돌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중생들의 고단한 하늘을 대신 이고 있는 듯한 모습.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얼굴이 오히려 내 이웃처럼 편안하다. 그 편안하고도 무심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핑매바위에서 보았던 추상적 염원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이것을 만들었을 사람들은 굳게 믿었을 터이다. 이 와불이 일어나리라고. 그리고, 고통 없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고. 그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저 돌부처를 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을 것이고. 돌의 침묵에 새겨진 사람들의 간절했을 염원이 여전히 뜨겁게 다가온다. 그 염원에 내 소원 하나를 보탰다. 부처님 얼굴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비로소 '화순'의 의미가 와 닿았다
▲ 도곡온천?대지의 기운이 응축된 태고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온천수다.
ⓒ 김재근
어둠이 세상의 경계를 지울 무렵 도곡 온천에 닿았다. 유황이 많이 함유된 알칼리성 중탄산온천수로 살결에 닿는 순간 미끄러운 비단을 두른 듯한 질감을 선사한다는. 예부터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영험한 치유의 샘이 솟았다 한다. 화산 암반층이 천연 필터가 되어 수천만 년 동안 걸러낸 지구가 빚은 보석과도 같은 물이라 하니, 대지의 기운이 응축된 태고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산행으로 지친 몸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듯했다.
온천수에 몸을 밀어 넣는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생의 감각을 일깨우는 포근한 모태(母胎)의 품속 같다. 물이 살결 속으로 스며들어 굳어있던 세포의 매듭을 하나하나 매끄럽게 풀어내는 기분이다. 잠긴 내 몸이, 깎이고 다듬어져 동그라미가 된 몽돌이 된 듯하다. 따스한 증기와 정지된 수면 그리고 그 위로 부유하는 고요, 종일 돌의 뼈대를 만지고 온 이에게 허락된 최적의 성소다.
광석대의 주상절리가 억겁을 견뎌낸 완고한 고집 같은 의지였다면, 도곡 온천의 물은 너그럽게 녹여내는 수용이었다. 보이지 않는 장막 속에서 길을 잃을까 염려했던 불안도, 채석장에서 가늠했던 생의 무게도, 거친 돌에 새기던 간절한 염원도 이 따뜻한 액체 속에서 형체 없이 흩어진다. 수증기 가득한 실내에서 뒤늦게 알았다. 사진에 담는 걸 한사코 말리던 그 안개의 정체가 지우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날카로운 것을 어루만지는 손길이었음을.
밖으로 나오니 밤공기가 쨍하다. 겨울의 한기가 청량한 향기처럼 다가온다. 문득 이 고장의 이름, 화순(和順)이 떠올랐다. 온화할 화(和), 순할 순(順). 여정을 시작할 때는 의아했다. 날 선 광석대의 바위와 거친 고인돌의 들판 어디에 온화함과 순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일까. 하루의 여정을 통과한 끝에야 비로소 그 의미가 와 닿았다. '화'는 마냥 유약한 부드러움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버티는 돌이 뼈대가 되어 주었기에 가능한 조화였고, '순'은 그 억센 골격 위를 흐르는 물이 살결이 되어 비로소 완성된 순리였다. 그날 나는 가장 단단하면서도 가장 부드러운 밤을 건넜다.
- '돌의 명함' 표현은 함민복의 시 <명함>에서, '카르페 디엠' 설명은 김영하 산문집 <보다>에서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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