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3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 이후 한국 외교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70여년 동안 한국 안보의 기축 역할을 해온 한-미 동맹은 크게 흔들리고 있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토대가 되어 온 자유무역 질서는 가혹한 ‘트럼프 관세’로 사실상 무너져 내렸다. 1980년대 말 ‘냉전 종식’과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함께 우리를 덮친 커다란 ‘전략적 도전’이었던 북핵 문제 역시 사실상 ‘해결 불능’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한국 보수의 근본적 교리였던 ‘한-미 동맹 강화’와 진보의 정책적 출발점이었던 ‘남북관계 개선’ 모두 불가능해진 상항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외교안보 정책을 둘러싼 진보-보수 간 정책 대립의 축 역시 이전보다 느슨해졌다. 보수 쪽에선 현재 우리가 직
골드몽릴게임릴게임 면하고 있는 상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2010년 10월~2013년 2월)으로 활동했던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3일 한겨레와 만나 “대미 의존을 줄이고 자강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각론에선 다른 지점도 있지만, 총론에선 진보 쪽 인사들의 진단과 큰 차이가 없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바다이야기디시 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현재 상황이 굉장히 혼란스럽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호자’에서 ‘파괴자’가 됐다. 우린 미국이 만든 자유무역 질서의 큰 수혜자인데 이것이 흔들리면서 벅찬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 외교 정책의 특징이라면 강자한테는 약하고 약자한테
게임몰릴게임 는 강한 ‘강약약강’이다. 특히 동맹국에게 가혹하다.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집착이 미국의 동맹 정책을 지배하고 있다. 그에 비해 ‘대국’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상에선 유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앞으로 북·중·러 북방 삼각 연대가 동아시아와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들과 우리의 ‘사활적 이익’을 해칠 수
오션파라다이스게임 있는 뒷거래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전적으로 미국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 지형이 격동하는 가운데,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선택을 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앞으로 ‘자강’을 국가안보전략, 생존전략의 중심에 둬야 한다. 한-미 동맹은 ‘자강’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실존적 ‘외부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이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우리와 위협 인식과 사활적 이익을 공유하는 일본·베트남·필리핀·인도 등 역내 국가들과 연대하며 ‘2차 보험’을 들어야 한다. 외교안보정책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초당적으로 대처해도 감당하기 벅찬 도전이 몰려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환영 행사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북핵 문제도 암담한데.
“진보 정부의 햇볕정책이든 보수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든 우리가 지난 30여년 간 취한 대북 정책은 다 실패했다. 북은 결국 핵을 개발했고 미국까지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만들었다. 평화의 토대는 더 취약해졌다. 햇볕정책을 추진한 대통령들은 핵을 개발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바꿔보겠다는 좋은 생각을 품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이 실패가 꼭 우리만의 책임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북한의 핵무장 의지를 꺾을 만한 레버리지가 없었다. 그런 힘을 가진 것은 미국과 중국이었지만, 이들에겐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할 정치적 의지가 없었다. 우리에겐 능력이 없었고, 미·중에겐 의지가 부족했다.”
―북은 2019년 2월 ‘하노이 실패’ 이후 2022년 9월 선제 핵공격이 가능한 핵 독트린을 내놓고, 이어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놓았다. 이재명 대통령도 현재 남북관계를 ‘바늘구멍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남북관계는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북이 내놓은 ‘적대적 두 국가론’은 공세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방어적이고 수세적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랫동안 고심을 한 끝에 내린 돌이킬 수 없는 결단으로 보인다. 할아버지 때부터 줄곧 이어온 ‘하나의 조선 정책’을 포기한 것은 북 입장에서도 자기들 정당성의 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선택을 한 것은 한국과의 체제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현실 인식과 함께 한국 문화의 침투와 흡수 통일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라고 본다. 북이 대외적으로는 허세를 부리지만 내부는 취약하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12월 제정)과 같은 일련의 입법을 통해 한국에서 밀려 오는 ‘반동문화사상’의 바이러스를 차단하고, 이를 통해 주민들의 사상적 동요를 막으려 발버둥 쳐왔으나 소용 없었다. 결국 ‘한국은 이제 같은 민족도 아니고 상종하지 못할 적대 국가’라고 규정해 북한 주민들의 머리 속에서 한국이라는 동경의 대상을 지우려 하고 있다.”
―진보 쪽 일부에선 북이 주장하는 ‘두 국가’를 받아들이되 ‘평화적 두 국가’를 만들어가자고 한다.
“북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으로 끌고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두 국가론을 내세울 필요가 없었다. 북의 정권 안보를 위해선 남북관계가 적대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듯 우호적으로 교류하다 보면, 남쪽의 문화·사상적 침투를 막을 수 없고 이는 북의 체제를 더 위태롭게 한다. 김 위원장은 정권 수호를 위한 ‘최후의 방패’로 영구 분단을 선택한 것이다. 통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한국과 교류 협력을 다 막겠다는 논리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내년 초에 당신들 싫어하는 한-미 연합훈련 안 할테니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해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 역시 두 국가론을 받아들일 순 없다. 북한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뜻밖에 변고가 생길 때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는 갖고 있어야 한다. 적극적인 통일 정책은 추진하지 않더라도 북한의 내부적 사정으로 기회가 저절로 왔을 때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잡을 명분과 근거는 살려줘야 한다.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보면, 그 전문에서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남북이 그해 유엔에 동시 가입하긴 했지만, 서로 간에는 상대를 (별도의)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선 중·러도 시비할 수 없다. 이 특수관계를 포기하면, 이후 언젠가 ‘천추의 한’이 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평양에서 처음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백화원 영빈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평양/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명 정부도 어려움을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론, 비핵화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교류와 관계정상화를 강조하는 엔드(END)이니셔티브 등이 그 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살 레토릭으로는 괜찮지만 현실성은 없다. 트럼프가 북의 핵 보유를 용인하고 정당화하는 일만 자제하면 된다. 엔드든 뭐든 비핵화에 진전을 이룬다면 기적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오랫동안 우리의 숙원이던 농축·재처리와 핵추진 잠수함(핵잠) 건조에 대한 미국의 지지·승인을 얻어냈는데.
“큰 성과지만, 과정에 대한 약속일 뿐 결과에 대해선 아직 약속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좀 아쉽다. 먼저 농축과 재처리를 보자. 이 둘은 구분해 봐야 한다. 농축은 반드시 해야 한다. 현재 한-미 원자력 협정 아래서도 미국산 우라늄이나 미국의 장비를 쓰지 않는다면, 미국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농축을 할 수 있다. 그동안 연구·개발을 해놓은 것이 없어, 하고 싶어도 못하지만 정치적 의지도 없었다. 농축 기술은 아무리 가까운 동맹이라도 절대 제공하지 않는다.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 미국은 1987년 미-일 원자력 협정에서 일본에게 농축할 수 있는 포괄적 사전동의를 해줬다. 그런데 일본은 그 시점에 이미 파일럿 플랜트(상업 생산 전 소규모 시험 설비)를 가동하는 등 이미 관련 기술을 갖고 있었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게는 승인을 거부할 수 없다. 미국이 우리에게 기술을 제공할 리도 없고, 장비를 줄 리도 없다. 우리가 독자개발해야 한다. 여러 원자력 전문가들에게 물어 보니, 우리 정도의 산업 기술력이면 지금부터 연구·개발에 나설 경우 5년 내 최소한 파일럿 플랜트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상업용 시설을 만들려면 10년은 잡아야 한다. 우리는 20기 넘는 원자로를 돌리는 나라다. 전체 전력공급의 3분의 1 정도를 원전에 의존하는 나라가 원전 연료를 전적으로 수입에만 의존한다는 건 우리 운명을 외국 농축 독과점 업체에 맡기는 꼴이다.(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20∼2024년 농축 우라늄의 도입국별 비중은 프랑스(38%), 러시아(32%), 영국(25%), 중국(5%) 등 순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너지 안보’를 위해 독자적 농축시설을 갖겠다는 것은 누구도 시비할 수 없는 당당한 명분이 된다. 그렇지만 기술은 아무도 주지 않는다. 독자 개발해야 한다.
재처리는 다르다.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미가 공동 개발하는 파이로 프로세싱이라는 기술이 아직 상용화 되지 않았다. 권한을 얻어도 문제다. 국내에 재처리 시설 부지를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재처리를 통해 나오는 플루토늄을 쓸 데가 없다. 이를 활용해 발전을 할 수 있는 ‘고속 증식로’를 먼저 개발해야 한다. 일본·프랑스 등에서 개발 중인데 성공하지 못했다. 재처리는 지금 급한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9월2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핵추진 잠수함 도입은 어떻게 보나.
“원래 이런 것은 보수가 더 좋아하는데 진보 정부에서 추진하는 게 신기하다. 해군 잠수함 함장 출신들 중 최고 엘리트는 이 계획에 반대한다. 해군 지휘부에서 하겠다니까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안 낼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핵잠이 과연 북한 잠수함을 잡는데 효과적인가이다. 핵 미사일을 장착한 북의 잠수함을 잡으려면 이들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북의 저수심 연안이나 내해에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매복하고 있다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기 전에 격침시켜야 한다. 이 작전에는 크기가 작은 재래식 잠수함이 유리하다. 이번에 폴란드 해군 잠수함 수주에서 스웨덴과 경쟁에서 진 것도 해군의 최신예 잠수함인 장보고-3(3000t급)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수심이 낮은 발트해에서 러시아 잠수함을 감시하려면 클수록 불리하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의 입장에서 가장 소중한 2차 핵 공격 수단인 잠수함을 내해에 안전하게 숨겨놓을 곳이 많은데 왜 굳이 미국 핵 잠수함이 다니는 위험한 외해로 내보내겠나. 북한 잠수함은 사거리가 2000㎞가 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하고 있다. 내해에서 안전하게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 내해에 숨어있는 북한 잠수함이 가장 위험하다.
재래식 잠수함을 우습게 여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재래식 잠수함은 수중에서는 디젤 엔진을 끄고 배터리로 움직이므로 소음이 없는 반면, 핵잠은 수중에서도 원자로와 냉각장치를 가동해야 하므로 소음이 크다는 결정적 약점을 갖고 있다. 2004년 환태평양훈련(림팩·RIMPAC)에서 한국의 209잠수함인 장보고함(1200t급)이 미국 항공모함과 순양함 등 수척을 모의 격침하고도 끝까지 미국에 탐지 당하지 않은 것도 재래식 잠수함의 탁월한 정숙성 때문이다. 미국은 공격용 핵잠을 50척이나 보유하고 있지만 북한 연안에 들어갈 수 있는 디젤 잠수함이 한 척도 없었다는 것이 대북 수중 작전에서 가장 큰 약점이다. 한-미간 역할 분담 차원에서라도 미국 핵잠이 접근할 수 없는 해역의 감시 공백을 우리 디젤 잠수함이 메워야 한다.”
지난해 10월1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지대지 미사일 현무-5가 처음 공개됐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이재명 정부는 전시 작전통제권의 임기 내 전환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보수에선 반대 의견이 많은데.
“임기 내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한-미가 합의한 전환을 위한 ‘조건’ 충족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북한의 핵 미사일 선제 사용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제일 시급하다. 미국에겐 억제가 실패해 북한이 실제 핵을 사용할 때 이를 거부할 역량은 부족하다. 이런 능력을 갖추려면 유사시 우리가 북의 모든 미사일 기지와 발사대를 일거에 제거할 수 있는 현무-5 같은 탄도 미사일 전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고, 다층 미사일 방어망도 촘촘하게 갖춰야 한다. 다만, 군을 정치화하고 엘리트 장교들을 정치적 이유로 대거 숙청하면 전작권을 받아와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지난 2013년 7월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전시작전권 환수 재연기 방침에 반대하며 즉각적인 환수를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마지막으로 중국과 관계는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친해지려고 너무 애쓸 필요는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추구하는 중국몽이 한국에게는 악몽이고 재앙이다. 중국은 안보분야 뿐 아니라 경제분야에서도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도 중국에 청탁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북의 동맹으로 북을 두둔하는 중국이 남북 간에 ‘공정한 중재자’가 될 수 없다. 중국에 과잉 의존하고 있는 희토류 등 핵심광물과 소재의 공급망을 다변화 해 자신들의 안보적 목적 달성을 위해 우리에게 경제적 강압수단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중국의 횡포에 대항할 첨단기술이나 소재·부품의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이 대중 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러면서도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관계를 순탄하게 관리해 가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본 적이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 여야나 진보·보수가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응해야 한다. 외교안보 문제는 당파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길윤형 논설위원 charisma@hani.co.kr 기자 admin@slotnara.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