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고용시장이 겉보기와 다르게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식 통계상으로는 여전히 구인 공고가 실업자 수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등 ‘일자리 부족 우려는 없다’는 신호가 감지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채용 둔화와 감원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유령 공고(ghost job)’가 확산되는 가운데, 10월 후반부에는 민간 기업 고용이 주당 1만명 이상 감소한 것으로 파악돼 고용시장 불확실성이 한층 짙어지고 있다.
구인 공고는 많은데…실제 채용은 뒷걸음
11일(현지시간) CNBC와 미국 노동통계국(BLS)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초 이후 구인 공고 수는 신규 채용 건수보다 월 평균 220만건 이상 더 많았다. 표면적으로는 ‘일자리 넘침’ 상황이지만, 상당수 공고는 실제 채용 의사가 없는 ‘유령 공고’라는 분석이다.
재스민 에스칼레라 마이퍼펙트레쥬메 연구원은 “노동시장은 서류상으로는 견조해보이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도 적지 않다”며 “구직자는 허탕을 치고, 정책 판단은 혼탁해진다”고 말했다.
실제 구인 공고는 지난해 3월 1200만건 이상에서 8월 약 720만건으로 떨어졌지만 같은 달 신규 채용은 510만건에 그쳤다. 기업이
향후 인력 수요에 대비해 미리 공고를 유지하거나, 인재 풀 확보 차원에서 형식적으로 공고를 게시하는 행태가 늘어난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숙련 인력 부족, 이민 규제, 기술 수요 변화에 따른 미스매치 등이 공고와 채용 간 괴리를 키우고 있다. 미국 중소기업연맹(NFIB)은 “팬데믹 이후 채용난이 가장 심화됐으며, 지원자의 88
%가 요구 기술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10월 후반부부터는 감원 확대 흐름 뚜렷
고용 둔화 흐름은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고용정보업체 ADP는 9월 28일부터 10월 25일까지 4주간 민간고용이 주당 1만1250명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앞서 10월 민간고용이 4만2000명 증가했다는 ADP 월간 통계와는 상이
한 결과로, 10월 초반에 집중됐던 고용 증가가 중순 이후 급격히 식었다는 의미다.
퇴직자 재취업 지원 업체인 챌린저, 그레이 앤 크리스마스는 10월 감원 발표 규모가 20여 년 만에 최대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미시간대 조사에서는 향후 1년 내 실업률이 오를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71%로, 198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용심리 역시 빠르게 식고 있음을 보여준다.
셧다운에 데이터 공백까지…美 고용 판단 ‘시계 제로’
이처럼 미국의 고용상황 파악이 중요한 시점에서 공식 고용지표 자체의 신뢰성도 흔들리고 있는 점은 최대 문제로 꼽힌다. 사상 최장기 연방정부 셧다운의 영향으로 9∼10월 고용·물가 통계 발표가 지연되는 데다, 연방정부 직원들의 한시적 무급휴직이 일시적 고용 감소로 과대 계상될 위험이 제기된다.
골드만삭스는 정부의 ‘유예 사직 프로그램’ 참여 인력을 반영할 경우 10월 미국 비농업부문 고용이 약 5만명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노동시장 여건 악화 위험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공개 시점 역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전으로 지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경우 통화정책과 시장 모두 ‘시계 제로’ 속 의사결정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실질적으로 주목해야 할 핵심 지표는 12월5일 발표 예정인 11월 고용보고서로 거론된다. 이는 12월 금리 결정뿐 아니라 내년 경기흐름에 대한 정책 시그널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에스칼레라 연구원은 “유령 공고는 구직자에게는 소진을, 정책 당국에게는 잘못된 신호를, 기업에는 신뢰 하락을 초래한다”며 “실제 채용과 고용지표가 다시 정합성을 찾지 못하면 미국 노동시장에 대한 신뢰는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상윤 (yoon@edaily.co.kr) 기자 admin@gamemong.info